챕터 17 그녀는 취했어
얀 젠은 와인 셀러에서 자기랑 같은 해에 나온 빨간색 와인 한 병을 골라서, 겸사겸사 고블렛 두 개도 챙겼어.
자기 잔에 한 잔 따르고, 이제 조우 줜한테 와인을 따라주려고 하는데, 잠깐 생각하더니 가느다란 하얀 손가락이 멈췄어.
"애들은 술 마시면 안 돼." 진짜 진지하게 말했어.
조우 줜은 입술을 쭈욱 내밀고 침을 꿀꺽 삼켰어.
키 187cm짜리 애를 본 적 있어?
근데 지금 얀 젠 눈에는 걔가 다섯 살짜리 꼬맹이 같나 봐.
"그럼 내가 뭘 마셔야 하는데?" 조우 줜은 또 얀 젠 말에 토를 안 달았어.
"냉장고에 우유 있는 거 봤는데, 내가 좀 따라줄게. 우유 많이 마시면 키 더 클 수 있거든."
진짜 애 취급하면서 달래네, 키가 그렇게 큰데 더 커야 한다니?
얀 젠은 조우 줜의 멍한 표정은 눈치채지 못하고, 냉장고에서 우유 팩 꺼내서 따가지고 고블렛에 따랐어.
고블렛에 우유 마시는 건 진짜... 뭔가 특별하네.
근데 그래도 조우 줜은 얀 젠 말에 토를 안 달았어.
"짠!" 얀 젠은 빨간 와인 잔을 들고 조우 줜의 잔 벽에 살짝 부딪혔어.
얀 젠은 잔에 있는 빨간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고, 다 마시고도 뭔가 좀 아쉬웠어.
상대 앞에서 술 마시는 건 거의 없는데, 왜냐면 술 마시고 나면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걸 아니까.
근데 조우 줜 앞에서는 그런 걱정 할 필요가 없지. 조우 줜은 그냥 애 같아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조우 줜을 평범한 남자로 대할 필요가 없잖아.
"너 와인 맛 진짜 부드럽다, 딱 봐도 엄청 잘 보관했네."
어느새 얀 젠은 빨간 와인 두 병을 다 마셨고, 볼은 이미 빨개졌어.
조우 줜은 얀 젠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바라봤고, 눈은 이미 살짝 풀려서 몽롱해졌어, 취기가 살짝 도는 것 같았어.
아직 최근 일 때문에 마음이 안 풀렸나 봐.
안 그랬으면 이렇게 맘 놓고 술을 마시진 않았겠지.
"그만 마셔, 너 취하겠다."
"이 와인, 안, 걱정 마, 너 와인 마셔, 내가 사다 줄게."
조우 줜은 웃었어. 자기가 그렇게 짠돌이인가?
얀 젠이 술을 더 마실수록 더 슬퍼하는 것 같았어.
식탁에 있는 음식은 거의 다 먹었고, 얀 젠은 와인 병 바닥을 보고 일어나서 와인 셀러에서 다른 병을 꺼내 왔어.
잔에 다시 따르는 건 너무 귀찮아서, 그냥 소파에 앉아서 병째로 입에 대고 마셨어.
"와인은 진짜 좋은 거야. 조금만 마셔도 사람이 훨씬 편해지니까."
조우 줜은 옆에 앉아서 자기 잔에 있는 우유를 흘끗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어.
술을 좀 마시니까 얀 젠은 온몸에 열이 나는 것 같았어. 코트를 벗어 던지고 얇은 옷만 남았어.
몸매가 진짜 좋아서, 얇은 옷이 섬세한 윤곽을 따라 붙었어. 조우 줜은 그걸 힐끔 보고 엄청 뜨거움을 느꼈어. 아무래도 어른 남자니까, 그렇게 예쁜 여자를 보면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없지.
얀 젠의 눈은 가늘게 가늘어졌어. 소파 등받이에 기대고, 온몸이 이미 좀 얼큰해졌어.
"내 삶의 의미가 뭔지, 뭘까, 계속 생각했어," 얀 젠은 딸꾹질을 하며 슬프게 말을 이었어. "회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한 프로젝트 때문에 한 달 넘게 회사에서 산 적도 있었고. 손님들하고 술 마시다가 위에서 피가 난 적도 있는데, 이제 와서 얻는 게 뭔데, 나보고 가라고, 내가 가야 한다고,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