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로스앤젤레스, 세바스찬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 쌓이는 서류 더미에 파묻힌 기분이었어. 아까 있었던 회의 때문에 완전 녹초가 됐는데, 쉴 틈도 없었지. 남은 하루가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고, 할 일은 끝이 없어 보였어.
눈앞에 있는 보고서에 집중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비서가 문 앞에 나타났어. 걱정스러운 표정과 일처리 능력, 둘 다 갖춘 얼굴이었지.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을 들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나한테까지 풍겨와서 잠시나마 위로를 주는 듯했어.
"커피요, 손튼 씨," 비서가 말했어. 내 힘든 하루 일과 중에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였지. 나는 피곤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어. 커피는 내 생명줄이 됐어. 끊임없이 쌓여 있는 서류를 해치우게 하는 카페인 뽕이었지.
비서는 조심스럽게 컵을 내 책상에 올려놓았고, 나는 고맙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어.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이며 문서를 치고 정리하는데, 머릿속은 눈앞의 일들을 끝내려고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어.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손가락이 키보드에서 미끄러지면서 커피 잔을 건드렸어. 잠시 균형을 잡고 흔들리더니, 결국 엎어져 버렸지. 뜨거운 액체가 책상, 서류 위로 쫙 쏟아졌고, 몇 방울은 내 깨끗한 흰 셔츠에도 떨어졌어.
"젠장!"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어. 의도했던 것보다 더 크고 격렬하게 말이지. 눈앞의 엉망진창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내 좌절감은 극에 달했어. 커피 자국이 마치 잉크 번짐처럼 번져 나가면서, 힘들게 작업했던 문서의 중요한 내용들을 가리고 있었어.
비서가 깜짝 놀라 내 곁으로 달려왔어. 눈이 커다래졌지. "정말 죄송해요," 비서가 죄책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했어.
나는 한숨을 쉬며, 그건 비서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분노를 억누르려고 노력했어. "괜찮아. 사고는 일어나는 법이지." 비서가 재빨리 냅킨 뭉치를 가져와서 엉망진창을 닦아내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봤어. 일 처리 능력은 칭찬할 만했지만, 이미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
비서가 엎질러진 커피를 치우는 동안, 나는 의자에 기대 앉아 잠시 눈을 감았어.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그런 날 중 하루였지. 아까 회의 때문에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서류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직면했어.
비서가 문서와 책상을 간신히 살리고 난 후, 조용히 내 사무실을 나갔어. 나 혼자 커피 사고의 잔해를 마주하게 되었지. 무거운 마음과 체념의 한숨을 내쉬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알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
미아가 보고 싶었어. 미아의 존재를 갈망하는 마음이 가슴을 쿡쿡 찔렀고, 우리를 갈라놓은 물리적인 거리를 끊임없이 상기시켜 줬어. 미아가 더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그래서 언제든 미아를 보러 갈 수 있고, 아니면 더 좋게는 미아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했어. 미아가 뉴욕에 산다는 건 진짜 짜증 나는 일이었어.
나는 장거리 연애를 하는 타입은 아니었어. 언제나 즐거움보다는 귀찮은 일이 더 많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미아는 달랐고, 미아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그 거리가 가치가 있었어. 정말 모든 마일이 그랬지. 미아는 내 인생의 사랑이었고, 내 버팀목이었으며, 내 미래를 함께하고 싶은 여자였어.
책상에 앉아 미아 생각을 하니, 입가에 저절로 진심 어린 미소가 지어졌어. 우리는 깊이 사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첫 아이의 탄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지. 아버지가 된다는 생각에 흥분과 목적 의식, 미아와 태어나지 않은 우리 아기를 위해 가능한 최고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고 싶은 압도적인 욕망이 가득했어.
가족으로서의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며 몽상에 잠기자, 갑자기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마치 전구가 켜지면서, 전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길이 밝혀지는 듯했지. 임신 소식부터 우리 주변에서 벌어진 엄청난 드라마까지,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삶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 우리의 초점은 거의 모든 도전을 관리하는 데 맞춰져 있었고, 그 모든 와중에도 신혼여행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조차 없었어.
그 깨달음이 마치 번개처럼 나를 강타했어. 우리는 신혼여행을 갈 자격이 있었고, 우리를 덮친 혼란에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했어. 우리의 사랑을 축하하고 함께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길 때였지.
나는 비서를 불렀어. 비서는 항상, 정확히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것 같았지. 비서가 들어왔고, 어떤 일이나 지시사항이든 적을 준비가 된 메모장을 들고 있었어.
"네, 손튼 씨," 비서가 전문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어.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비서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단호하게 말했어. "신혼여행을 예약해줘. 그리고, 손튼 부인에게 다음 주말은 비워두라고 전해줘."
나는 비서가 우리의 오랫동안 기다려온 신혼여행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려고 목적을 가지고 사무실을 나가는 것을 지켜봤어. 비서는 능률적이고 믿을 수 있었고, 내 전문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 모두를 관리하는 데 있어 진정한 자산이었지. 비서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따라 부드럽게 울려 퍼졌고, 문이 닫혔어.
비서가 나가자, 나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세상의 무게가 어깨에서 내려가는 것을 느꼈어. 미아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신혼여행을 깜짝 선물로 주기로 한 결정은 만족감을 안겨줬지. 그건 내 마음속으로 미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반영하는 제스처였고, 나는 내 여자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의향이 있었어.
'행복한 아내는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울려 퍼졌고, 그 말에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었어. 미아는 내 파트너였고, 내 친구였으며, 내 인생의 사랑이었지. 미아의 행복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었고, 단순한 서프라이즈 신혼여행이 미아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줄 수 있다면, 그 어떤 노력도 할 가치가 있었어.
이전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던 일에 다시 집중하자, 내 관점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놀랐어. 아까는 거의 짓누르는 듯했던 엄청난 양의 일들이 이제는 그렇게 벅차 보이지 않았어. 새로운 결의와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지으며, 나는 한 번에 한 항목씩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어.
내가 검토하는 각 보고서, 내가 보내는 각 이메일, 내가 하는 각 전화 통화에는 목적 의식이 스며들어 있었어. 이런 노력이 미아와 방해받지 않는 주말을 위한 길을 열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필요한 모든 동기 부여가 되었어.